◆나의이야기

본전 장사가 남는 장사다

벼리맘 2014. 11. 15. 07:00

본전장사가 남는장사다!

 

추석에 생질(시누이 아들)이 다녀갔다.

손에는 금일봉을 들고서

그리고는 내게도 봉투 하나를 내민다.

"외숙모 정말로 감사합니다.

외숙모 외삼촌 덕분에 제게 오늘이 있어서요"

늦게 군 복무를 마치고 몇 달 전에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느라 진작에 못 찾아 왔다고 하면서

인사를 착실히 했다.

 

1999년, 김정일이도 무서워서 쳐내려 오지 못한다는  

중2짜리 시조카(생질)를 데리고

멀고 베네수엘라, 남편의 근무지 겁도 없이 떠났다.

우리 아이들 둘에 조카까지...

베네수엘라 역사상 조카까지 외교관 신분증도 받았다.

그러나 시누이 아들을 어쩔려고 데리고 왔냐고 지켜보던 걱정스러운 눈들...

그래서 그 때 생각했다.

이 아이가 잘 되면 본전장사 라고~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건

영어도 스페인어도 못했던 아이가 대입시험을 치루던 날

그 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시몬볼리바르대학교를 하필이면 첫 날에 치룰게 뭐람

우리는 새벽에 차를 타고 가면서 어차피 이 학교는 그냥 연습게임이니까 맘 편히 보라고..

그렇게 시험을 몇 몇 학교를 보고 한편으로는 특례입학 자격도 얻어뒀다.

그것도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외교관조카에게 특례입학자격을 준거란다.

암튼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린 결과 꿈에도 생각지 않은

'시몬볼리바르대학교'합격을 한 것이다.

 

그 날따라 남편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나는 운동을 갔다가 오니

조카가 난리가 났다,

"외숙모, 나 시몬볼리바르 합격했어"

그치만 난 농담인 줄 알았다.

어차피 못 가는 곳이니까 농담으로 하는 줄,,,

그런데 진짜로 합격한 것이었다.

그것도 1500명 선발에 502등으로.....ㅎ

우리는 둘이서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서로 어쩔 줄을 몰랐다.

내 생에 있어서 4대 독자인 우리 아들을 낳았을 때 다음으로 기뻤다.

어찌나 좋았던지 밤새 잡채를 준비하고

냉동고에 비상으로 만들어 놓은 80개가 넘는 찐빵을 녹이고 해서

그 다음 날 교회에 가서 잔치를 했다.

 

다들 대단한 외숙모라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대단한 외숙모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조카이긴 하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5년 동안 학비면제 교통비까지 면제,,식당에 밥값도 거의 공짜 수준...

그런 학교를 들어가서 졸업까지 한 조카가 정말로 대견하다.

중간에 우리는 근무가 끝나서 조카만 남겨두고 오게 됐을 때도  착실하게

외삼촌한테 누가 되지 않게 성실하게 공부해줘서 정말 고맙다.

 

같이 데리고 있을 때 누누히 둘이서 한 말이

"네가 잘 돼야 외숙모는 본전장사라도 되니까 부탁한다"고...

3년 6개월 데리고 있는 동안 말썽 한 번 안부리고

우리 아이들 둘 다 대학교때문에 귀국을 하고 1년 반 동안 혼자 있을 때도

아무 문제없이 착실하게 공부해준 결과가 "본전장사"

입사해서 연수갔을 때 팀장님이 물었단다.

널 거둬 준 분이 친삼촌이냐? 아님 외삼촌이냐?

외삼촌이라고 하니까 외숙모께 감사하고 잘하라고 하셨단다.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남는 장사를 했다!!

왜냐면 본전장사가 바로 남는장사기때문에~

그리고

어떤 댓가보다가도 값진 것을 알아주신 그 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잘 생기고 착한 생질"

(원래는 더 잘 생겼는데 사진이 잘 못 나와서 ..ㅋ)